minimom58
2004. 11. 17. 15:50
이곳에 와서 여고 동창들을 만난 것은 올해 봄이다. 졸업한지 28년이 되었고 그나마 만나보니 한 친구만 그래도 동창이라 한달에 한번씩 삐죽 만나는데도 오늘은 친구의 남편이 서울로 마실을 간 사이 모처럼 집에 들어서니 살림 잘하는 안주인의 손길이 집안의 잘 정돈된 살림살이로 집안 전체가 윤택해 보인다. 벽난로 위엔 가족 사진이 큰 사진과 작은 사진의 작은 모퉁이까지 부지런하고 깨끗한 안주인의 성품을 말해주듯 반짝거린다....이 집 남편은 참 복도 많다... 결혼 전부터 직장 생활을 한 나는 남편의 도움을 오히려 많이 받은 편이다.특히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는 교대 근무를 하는 나를 대신하여 아침나절 씻기고, 옷입히고, 밥먹이는 일들이 온전히 남편의 몫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승진과 함께 정규근무만 했었지만, 출근이 이른 탓에 아침에 아이들 등교시키는 일은 여전히 아침 시간의 여유가 많은 남편의 것이었다. 딸아이의 기억 속에 아빠는 어린 저의 머리를 꽁꽁 묶어주던 일로 시작되는데, 그 손의 힘이 억세고 서툴러 딸의 어릴적 사진을 보면 만화영화의 캐릭터(삐삐...던가?)처럼 삐뚤게 묶어진머리로 귀엽게 웃고 있는 것을 볼수있다. 여하튼 직장을 그만둔 그 해에 나는 딸아이와 쏘옥 벤쿠버로 왔으니, 남편은 전업주부로서의 마누라 혜택은 거의 받은 적이 없는 셈이다. "그저 팔자려니..." 한다지만 생각할수록 미안하고 남편이 안스럽다.여고 동창인 친구는 음식도 잘했다. 친정 엄마한테나 얻어 먹어볼 깊은 맛의 음식이 한상가득 요사이 살이 자꾸 쪄서 저녁을 가볍게 먹는데, 앞뒤 가릴 것 없이 수저가는대로 먹어버렸다. 거기에다 커피와 함께 먹을 후식은 또 다른 친구가 호두파이를 근사하게만들어 가져왔다.... 이래서 좋은 친구들은 다이어트엔 도움이 전혀 안된다. 속회예배와 겹쳐 아쉬워하며 먼저 일어서는데, 안주인이 직접 교회로 가는 도중에 옆자리에 놓은 꾸러미에 자꾸 눈이 간다. 종이백 위로도 유리병을 통해선명하고 맑게 비쳐나오는 예쁜 빨간색에 눈이 아련해지며 시야가 흐린다. 요사이처럼 사랑을 많이 받기만 하면 금새 빚이 눈덩이처럼 나도 사랑을 되갚아 주려면 모두들 건강하게 오래토록 내 옆에 노쇠하신 친정 어머님과 남편의 얼굴, 그리고 아는 분들의 얼굴이 자동차 앞 유리로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 | |
♬ 아름다운 가을영화음악 연속듣기~ ♬
* 사관과 신사
* 가을의 전설
* 뉴욕의 가을
* 라스베스를 떠나며
*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
* 카사블랑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