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하면 서울은 늦은 밤이다. 그리고 화상채팅을 하다보면 금새 학교 갈 시간, 서울은 자정이 넘어버린다. 매일 새벽 잠을 포기하고 일어나 컴퓨터에 앉게 되는 것은 남편이 습관처럼 하는 "이 것마저 없었으면 외로와서 벌써 보따리 싸서 캐나다에 다시 갔을거야
이제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습관이 되어버렸다. 시계가 울리지 않아도 정확히 5시면 눈이 떠진다. 남편이 저녁 약속이 있는 날외에는 거의 매일처럼 되풀이되는 일과이다. 이렇게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꼭 물어보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 번째는 그렇게 매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남편이 그렇게 좋으냐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이야기는 여느 부부와 똑같다.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밥 먹었냐... 학교 잘 다녀왔냐...뭐 이런 소소한 이야기다 가끔씩 햇빛 좋으면 이불 널어라, 빨래통에 먼지망을 비워줘라...등등의 남편이 잊기 쉬운 살림살이에 대한 정보도 주고, 국 끓이는 법을 강의하기도 한다 물론 운동해라, 술 자리 줄여라, 기름진 음식 피해라..등등의 잔소리도 한다 남편 입장에서도 나한테 할 잔소리가 만만치 않게 많다. 운전 조심해라...운동해라....카드 번호 아무한테나 불러주지 말아라...등등 한편으로는 같이 있지 못한 시간동안의 생활을 나누어 갖기도 하고, 서로를 간섭하기도 하면서 20년이 넘도록 유지해온 동지(?) 관계를 매일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나이는 불같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 관계가 아닐까? 매일 만나도 싫증이 안나고 같은 말을 반복해도 또 할말이 생기는 그런 친구말이다.
내일 아침은 남편의 저녁 약속으로 채팅이 없는 날이다 그래도 새벽 시간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이런 현상을 두고 "노화"라고 한단다. 한 해가 또 가고 있다. 금방 끝나니라 기대했던 이산 가족의 생활도 또 한 해를 더한다. 안개 속으로 걷고 있다는 느낌은 이제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선명하게 길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겨울의 시작이 춥게 느껴지지 않고, 빗소리도 리듬을 맞추며 듣는 여유가 생겼으니 나도 많이 너그러워 졌나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