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om58
2004. 11. 30. 11:03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1970년대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난 남매의 이야기였는데, 우리네 그 맘 때의 아들 편애 문화를 잘 보여준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것은 드라마 에서 뿐만이 아니고 내가 어릴 때는 아주 일반적인 문화로서 우리 집 안에서도 자연스런 규범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내가 국민학교 저학년일 때 우리 집에는 우유 1병이 배달되었다. 당시 우유는 귀한 것이었고 지금의 작은 사이다 병 같은 것에 왔는데, 전적으로 남자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와 직장 다니던 큰 오빠와 작은 오빠가 나누어 마시곤 엄마를 비롯한 우리 다섯 자매는 빈 병이 나와 있는 것만 볼 수 있었다. 언니들은 의젓하게 그런 것들을 참아 냈지만 아직 어린 나는 행여 하는 맘으로 몇 번이고 그 빈 우유병을 들여다보고 흔들어보기도 했다. 상차림 또한 많이 달랐는데, 안방으로 들여가는 세 부자의 상엔 부엌 한 켠에 장식처럼 매달려 있던 굴비두룸에서 굴비가 한 마리씩 빠져 나와 오르기도 하고, 달걀 하나를 뚝배기에 쪄서 올리기도 했지만, 툇마루로 내어가던 여섯 모녀의 상에는 그때 흔하던 꽁치나 갈치 토막, 어묵 조림이 단골 메뉴였다. 그 때는 언니들이나 나나 그러려니 받아 들였지만 마음 한 구석으론 상처가 생겼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푸대접 속에 자란 딸들에겐 오기가 생기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딸들은 다 강인하고 독립적이다. 상대적으로 두 오빠들이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소극적인데 반해 훨씬 극성스럽다 느껴지는 것도 있으리라. 지금도 가끔씩 언니들과 모이면 그 이야기를 하면서 노모에게 여쭈어 보기도 한다.“엄마, 아들들한테만 왜 그렇게 절절 매셨어요?” 노모는 주름진 얼굴을 쓸어 내리며 겸연쩍어 하신다.“그때는 딸들은 시집가면 남의 자식이라 다 소용없다고 생각했지…..” 내가 첫 아들을 낳았을 때 시아버님은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을 쏟으셨다. 한 살 아래로 딸이 태어났으나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은 첫 손주인 우리 아들에 대한 사랑이 특별하셨다. 자연히 딸아이는 남편과 나의 똑 같은 배려 속에서도 노인 분들의 아들 편애사상을 경험하며 자랄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 다녀오면 시아버님이 큰아이만 데리고 외출하신 적이 많았다. 딸아이는 혼자서 짐짓 조용히 놀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론 몇 번이고 따라 나서고 싶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외할머니도 가세를 하여 세배 돈도 만원 한 장을 아들이 고등 학생이 되도록 차이를 두고 주시면서 “남자니까….”라는 말을 덧붙이 시곤 하셨다. 공교롭게도 우리 딸아이도 보통 극성스럽고 분주한 것이 아니며, 지극히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들아이와는 대조적으로 외향적이며 활달하다.성장환경이 성격형성에 많이 영향이 있듯, 옆에 있는 아이들보다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느긋해서 그런지, 경쟁심이 없어서 그런지, 수동적이다.반면 편애를 경험한 아이들은 욕심도 많아지고 자기 것을 극성스럽게 챙기 기도 하며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전체적으로 성별에 따른 성격이 바뀌어져 가는 것 같다. 여자아이들이 활발해지고 남자아이들은 조용해졌다. 아들과 딸에 대한 편애의 경향이 거의 없는 캐나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면 시대의 변화에 따른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캐나다에서 살면 여자들의 성격은 분명 변한다. 수다스러워지고 분주해지며 발품도 넓어진다. 남자들이 말이 없어지고 기가 다소 꺾여 가는 것에 비해선 대조적이다. 나 또한 많이 변했음을 스스로 느끼는데, 이를 두고 남편은, “남성 호르몬이 점점 많아진다.”고 한다.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당신이 점점 여성 호르몬이 많아지니 나라도 그래야지 공평하잖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