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om58
2004. 12. 28. 01:54






어릴적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특히
내가 살던 삼선교 산 동네는 바람에 살이 에이도록 시렸고 대문 고리를 잡을 적마다 그 곳에 손이 쩍쩍 달라붙곤 했다.
그리곤 겨울마다 반복되는 일이 있었는데 마당에 있는 수도관이 얼어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 때면 마을 공터 한 가운데
있는 공동 수도관에 물통을 들고 긴 줄을 섰어야 하는데, 항상 어린 내가 줄을 지키는 역할을 했고 언니들이 교대로 물통을 들어
날랐다.
그때는 왜 그리 변변한 물통도 하나 없었는지, 집안에 있는 조랑조랑한 양푼 그릇이 다 동원되어 추위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그 긴 줄을 몇 바퀴 돌아가고 한나절이
지나야만 우리 가족의 물긷기가 끝이 났다.
좁은 부엌 공간마다 물통을 늘어놓고는 벌겋게 얼은 손을
녹이려 아래목에 옹기종기 모여 이불 속에 앞다투어 손을 넣고 있으면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서로를 쳐다보며
낄낄대기도 하고 이불을 자기 앞으로 당기며 실갱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눈 쌓인 장독대를
올라 지붕까지 손을 뻗쳐 고드름 하나씩을 따온다.
아래목으로 들어가 먹는 얼음과자의 아삭한 맛은 지금의 어느
아이스크림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또 겨울의 추억은 방 안에 늘 불기를 뿜어주던 화로에도
있다.
가계를 하는 엄마 대신 살림을 맡아
동생들을 돌보던 큰 언니가 그 안에 가끔 고구마나 감자를 넣어두어 학교에서 오는 동생들을 맞기도 하고, 그 때는 흔하지 않던 제빵 기술을 막
배운 언니가 식빵을 굽는다고 아궁이 위에 양은으로 된 식빵틀을 엊어 놓으면 빵 익는 냄새가 작은 동네에 가득해 이웃 아이들도 나무문 사이로
얼굴을 디밀어 기웃거리곤 했다.
구운 고구마 하나에, 밀가루와
이스트만 넣은 식빵 한 조각에, 지붕 모서리에 열린 고드름 하나에 너무나
행복하고 즐겁던 어린 시절이었다.
지금 나는 너무도 아름다운 벤쿠버 한 가운데에
있다. 그 곳의 겨울 풍경이 벤쿠버의 웅장한 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데도 팽이 돌기처럼 교대로 연상되는
것은 둘다 아름답고 예쁜 모습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 추억은 소중하다
외로울 때, 힘겨울 때 그 추억은
다시 삶에 대한 의욕과 용기를 주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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