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좋은 날,
마당 가득 빨래를 하여 널고 싶다.
살랑거리며 날리는 옷갖 무늬의 옷들 한 켠에
의자를 놓고 기대앉아 무릎에는 내 좋아하는
책 한권을 펼치고 따사로운 볕을 받다가
살찐 고양이처럼 낮꿈에 빠져도 좋으리라.
봄에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또는 사랑할 꿈을 꾸는 것 같다. 그것은 젊고 팔팔한 사람들만이
아니고 황혼에 들어선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늘 사랑하며 복딲이며 살아도 어쩐지 덜 채워진 느낌과 아쉬움은
욕심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린 영화나 드라마의
사랑이야기에
중독되는 것이 아닐까? 대리 만족을 얻으려 말이다.
남편은 요사이 드라마 이야기를 많이한다. 전에 내가 드라마를
볼
라치면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려버리던 사람인데,
이제는 밤 시간에 하는 드라마를 곧잘 보나보다.
언젠가 친구가 하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남자들이 나이먹으면 왜 잔소리가 많아지는지 아니?
여성호르몬이
나오면서 그동안 관심이 없던 살림에 눈이 가는거야....
눈에 띄는 것마다 새롭고 참견하고 싶지 않겠니?"
그때는 웃어 넘겼는데, 컴퓨터 화면 속에 있는 남편이 드라마
이야
기를 한참 하고 있으면 남편의 나이가 느껴져 서글퍼지기도 한다.
...저 남자 지독히 외롭구나...하기도 하고...여느 아줌마들처럼
아직
도 사랑을 꿈꾸나보다...이렇게 생각되기도 한다.
이제 정말 구부정해진 어깨가 무척 애처로워 보인다. 혼자서 지는
짐이 그렇게 무거웠나보다. 목에 까지 올라와 있다고 막상 하지 못
하는 말,
.... 그 짐 다 내려놓고 비행기타고 와버려요...
채팅후 남편이 없다고 마냥 게을러진(의욕상실이다) 살림살이 모양
을 돌아보면서, ...저 사람이 여기 있으면 잔소리 꽤 해대겠네... 맘먹
고 청소를 시작했다.
한 바탕 청소를 끝낸 후, 이층 창가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자고 했
는데 비가 오는 바깥 풍경으로 자꾸 눈이 간다.
오전내내 앉아있는 동안 그림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앞 길로
장애자 전용 차량이 와 서더니 앞집 Mattew 아저씨가 작업 치료를
위해 차에 올라 타는 모습이 보인다.
Mattew는 몇해전에 뇌졸증으로 쓰러진 후 편마비가 되었다고 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말도 잘 하지 못하고, 보행기를 사용해 걸었는데
이제는 많이 좋아져 혼자 운동다니는 모습을 종종 볼수가 있다.
그리곤 다시 그림으로 정지된 듯 고요하다.
까마귀 몇 마리가 앞집 지붕위에 곡선을 그리다 앉기를
반복한다.
비가 오는 날은 특히 사람이 살지않는
적막한 도시같다.
나는 이런 고요함에도 익숙해간다.
이 블러그도 이사 몇번후 찾는 사람이 없으니 맘이 오히려 편하다.
혼자만의 일기장....그도 좋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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