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쿠버의 일상/기러기 이야기
딸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minimom58
2002. 7. 15. 12:51
사랑하는 내딸에게,
요사이 네가 힘들어 보이더구나.
맘먹고 하는 유학생활이지만, 11학년으로 왔으니 2년동안에 학점를 따야 졸업하는 터라 어렵고 힘에 부치겠지.
손이 부르트도록 단어를 정리하고 외우는 너를 보면, 정말 안타깝단다.
어떻게 도와줄수 있을까, 궁리를 해봐도 엄마가 할수 있는건 맛있는 도시락 싸기와
가끔씩 친구들 불러 한국음식 먹이며 기를 살리는 방법뿐이 없구나.
그런데 너는 그러더구나.
“엄마 때문에 자꾸 살찌잖나. 얼굴 뚱뚱해진 것 봐.”
“엄마 때문에 점심 많이 먹어 배가 나와.”
엄마 때문에 안되는게 또 있지.
“엄마랑 한국말을 쓰게되니까 영어가 안 늘어.”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영어가 안돼. 캐나디언 집에서 홈스테이 하는 아이들이 부러워.”
그런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당황이 되고, 여기 쫓아와 있는 내가 도움이 안되는 것같아 우울해진다.
그러면 너는, “엄마, 아빠한테 가. 홈스테이 하는게 더 좋아.”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아빠랑 오빠가 보고 싶고 걱정되는건 당연한데, 엄마도 힘들고 외로운건 당연한데 말이지.
민희야,
네가 욕심이 많고 남들보다 잘하고 싶어한다는 걸 안다.
열심히 적응중인 네가 엄만 정말 고맙고 대견하단다.
하지만 지금 캐나디언 학교에 다닌건 불과 두달, 완벽하길 바라긴 너무도 짧은 시간이 아니겠니?
엄마도 캐나디언 집에 홈스테이 하면 영어에는 도움이 될거라는건 안다.
또 네 바람대로 조금 마르기도 하겠지. 음식도 다를테고 가족이 생각나고 외롭기도 할테니..
하지만 아빠의 두툼한 어깨, 동그란 얼굴을 꼭 닮은 네 모습은 엄마에겐 지금 그대로도 너무 예쁘구나.
엄마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너랑 이곳에 온 것은, 너만을 위한 희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삶을 위한 엄마의 의지였고 선택이었지.
그런데 너는 적지않은 부담을 느끼는듯하다.
엄마가 너에게 매달리는 만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생각만큼 만만치 않은 학교생활 사이의 갈등이 너를 심히 피곤케하고 예민해지게 하나보다.
하지만 네가 엄마 때문에 뭔가 안된다고 할때마다 엄마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정답을 모르겠다.
엄마가 있어서 좋은것도 많을텐데....
힘든거 있으면 이야기하고 상의할수도 있고,
홈스테이 하는 아이들처럼 눈치 안봐도 되고, 다른거 신경 안쓰고 공부할수 있는것도 있고...
민희야,
우리 서로 노력하자꾸나.
엄마는 네 앞에서 외롭다, 지루하다 는 이야기 안하고,
영어 배우러 다니고, 자원봉사도 하면서 바쁘게 살테니까,
너는 엄마가 있어서 정말 좋다는 말을 가끔씩 해주렴.
이제는 우리 둘이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는 수밖에 없지않니?
또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고 하겠구나.
엄마가 원하는건 최고의 삶이 아니라 최선의 삶이다.
지나친 욕심부리지 말고 한 계단씩 오르거라.
정말로 사랑한다. 민희야.
할로윈데이에 엄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