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om58 2002. 11. 6. 18:14














커피를 한잔 사들고 산책을 나갔다.

유난히 아름다웠던 벤쿠버의 가을을,서울로 갈때 단풍 몇잎으로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공원길을 따라 걸으며 떨어진 단풍잎마다 뒤지는데 벌써 잎들이 마르고 색깔도 퇴색되었다. 가지도 많이 비어있다.

서울에는 첫눈도 오고 영하의 날씨라는데 이곳도 곧 겨울이 올거 같다.



지난주에 아들의 홈스테이 집을 방문했었다.

만나서 저녁이나 같이 하려고 했는데, 아들녀석은 나가서 사먹는거 맛이 없다며 엄마가 한국음식을 준비해 오면 좋겠다고 했다.

덕분에 그날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잡채와 빈대떡, 미역국...등을 만들어 싸들고 택시를 한시간이나 타고서 가야했다.
(이곳 택시값 정말 비싸다. -.-;)



주인 아줌마와 딸뿐인 집에 음식은 열명이 먹어도 넉넉할 정도로 했으니(낮에 가끔 손자들이 2명씩 있곤 해서 혹시나 하고) 풍성하고 넉넉한 저녁이 되었다.

보기에도 손이 많이 가게 생긴 음식들인지라, 먹으며 계속 혼자 만든건지, 재료가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연신 맛있다며 김치빈대떡도 먹고, 김치와 고추장 소스를 찍어먹어보더니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우유를 큰잔으로 들이킨다.

며칠동안은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을수 있기 때문에 남은 음식을 정리하는 아들도 신났다.

나가서 먹었으면 덜 번거로왔겠지만 역시 잘했다 싶다.



저녁먹으며 보니 아들이 조금은 달라있다. 같이 있을땐 식탁에서 턱만 쳐들고 있었는데, 그릇도 나르고 먹은 자리도 치운다.



그런데...방은 여전히 정리가 안되어 있다. 아래층을 혼자서 쓰고있으니 신경을 안쓰나보다. 전에 윗층을 쓸때는 식구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 깨끗히 정리하고 살더니만...


저녁식사후에 그집 딸이 피아노 연주를 했다. 배운적이 없다는데 제법 잘친다.

연주후에 아들한테 게임을 하자며 게임판을 가져와 규칙을 한참 설명하는데
우리나라 "알까기"게임과 똑같다.
그 단순한 게임을 둘이서 재미있다며 반복하고 있다.

서울에 있을때 같았으면 그런 놀이는 시시하다고 하지도 않았을텐데...

벽난로 앞에서 가족끼리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도 캐네디언 문화의 하나다.



Anni 아줌마는(주인) 우리 아들처럼 '얌전하고 조용한' 학생을 만나 행운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고보니 우리 아들한테도 경우바르고 사람좋은 홈스테이 주인을 만난게 행운이다.
음식은 안맞아도 여러가지로 편안하고 좋다고 한다.



밖이 깜깜해져 일어서는데 주인여자가 어떻게 갈거냐고 묻는다.

앞길에서 버스타고 가다가 스카이트레인으로 갈아탈거라고 하니, 자기가 역까지 태워다 주겠다며 같이 일어선다.

근데 역까지 가는 길을 잘 모른다고 동생네 집에 전화를 한다.

혼자 갈수 있다고 몇번을 이야기해도 안된다고 하며 근래에 벤쿠버에서 아시안 여자들이 피습 당한적이 있어 위험하다고 한다.



결국은 차를 타고 동생네 가서 동생차로 갈아탄뒤에 역까지 갔다.

차에서 내리기전 주인은 맛있는 저녁식사 답례로 날 가볍게 안았다.

손으로 등을 두어번 두드리며 고맙다고 한다....난 아직도 이 인사법에는 서툴기만 하다.

집으로 오면서 아들에 대한 걱정이 어느정도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이라 생각하는 길을 택한거라 믿기로 했다.



오늘 저녁부터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제 개인날이 없이 봄까지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될 것이다.

친한 집사님이 그러신다. 내가 서울의 가을을 몰고 온 모양이라구.

내가 머무는 내내 날씨가 좋아 하신 말씀이다. 생각해보면 감사할게 날씨뿐이었으랴.

이곳 생활을 하며 좋은 분들과 연을 맺어주셔서, 많은 기도를 받게 하셨으니
어설프게 시작한 우리 아이들의 홀로서기가 큰 사고없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고,
보고싶어 목메지 않도록 서로 오갈수 있는 여건을 주셨으니 그 또한 감사의 제목이다.


이틀전에 다시 아들아이를 방문해 장조림과 밑반찬을 챙겨주고 왔다.

딸아이 먹을 음식은 간편하게 먹을수 있도록 냉동실에 일인분씩 포장하여 넣었다.

요사이 태평양을 건너 아이들과 남편 사이로 오가는 엄마들이 많은데 어떤분이 그런 자신의 상황을 "국제식모"라고 표현했다고 해서 한참을 웃었다.

서울에 가면 남편 먹을거 준비에 시간을 다 보내고, 아이들에게 오면 다시 먹을거 준비하다 다시 서울에 돌아갈 시간이 된다는 이야기다.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비가 오랫동안 오지않아 벤쿠버가 너무 가물었단다.

오늘 비는 그래서 단비다. 많이는 안내리지만 비에 촉촉히 젖는 벤쿠버의 야경도 아름답다.


...아마도 벤쿠버에 정이 들어가나보다.....





가을과 겨울이 함께하는 곳







흐르는 노래는...
장나라의 "물망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