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추위도 봄 장군의 기세를 못당하고 녹아내렸다. 얼음은 낙수로 내려와 벌써 개울가로 다달아 봄을 맞는다. 아파트에서 보이는 북한산의 높은 봉오리에는 흰눈이 안보인지 꽤 오래다. 아직 산새의 모습은 잿빛이지만 곧 파릇함으로 덥히리라. 북한산을 바라보자면 온통 냇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봄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
한 계절이 왔다 감은 인생에서 순간에 지나지 않으련만 보낼때마다 미련이 남으니 시간 시간을 성실히 못지냈나보다. 목마르다고 가슴만 치고 호수가를 찾으려 일어나질 않았으니... ...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후회스럽기만 하다. 눈오는 풍경을 칼럼의 액자에 담아 겨울을 보내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았다 .
날씨가 따뜻해 지면서 베란다 문을 열어 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환기도 시키고 찬 공기도 들여마셔 폐를 신선하게 하려함이다. 그런데 외출에서 돌아오면서 아파트를 보면 베란다 문이 열린 집은 우리집 하나이다. 거기다 안쪽 문도 활짝 열어놓기 일쑤니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남편은 문부터 닫으며, 아직도 날이 찬데 유난스럽다고 한다. 더운거 못참고, 식구들이 뒹굴거리는 거 못보고...인내심이 없는건가...?
2월부터 복지관을 큰데로 옮겨 다니고 있다. 크니까 시설은 좋은데 사람이 많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 진도가 좀처럼 나가질 않는다. 특히나 노인분들이 대여섯명 계시는데 의욕만큼 손이 따라주지 않으니 선생님이 무척 갑갑한가 보다. 보다 못해 뒤에 계신 두 어르신을 맡아 가르쳐 드렸다. 예상외로 금방 알아 들으시는데, 문제는 눈이 안좋으시니 화면을 바로 못 읽으신다. 수업이 끝나고 짐을 챙기는데 뒤에 어르신께서 프로그램 다운 받는법을 물으신다. 지금 배우는 것이 나모웹데이터를 이용해 홈피 작성하는 방법인데 나모 프로그램이 없으시단다. 글쎄...혼자선 못하실텐데요...반신반의 하며 심파일에서 다운로드 받는 방법을 설명하고 메모지에 적어 드렸다. 젊은 사람들에게 부탁해 보세요...그러자 ...다들 바빠서 내가 해볼거야...하신다. 다음날 인사를 드리며 여쭈어보니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설치하셨단다.
사람이 시간을 거스를수 없으니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가물거리는 거야 어찌 막을 수 있으랴. 느린 손으로 자판을 더듬어 깨우치려 하는 그 마음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노인들 탓에 진도가 느리다고 마음으로나마 짜증낸 것이 부끄러웠다.
남편이 물어본다. ...그렇게 열심히 배워서 뭐할거냐고... 뭐하긴 이 사람아, 늙어 꼬부라질 때까지 당신에게 영상 편지 보낼라고 그러지... 남편의 입이 귀에 걸릴거다. 아니면 실없는 사람 취급 할라나?
복지관에서 오는 길에 쵸콜릿 한봉지를 샀다. 국경없는 기념일이라 해도 내가 안주면 두 남자는 받을 데가 없어 기가 죽는다. 아들건 예쁜 선물 상자에, 남편건 실용적인 양철 캐이스에(나중에 재떨이로 쓰라고) 쵸콜릿을 가득 넣었다. 쵸콜릿은 입에도 대지 않는 남편의 반응은 매년 똑같다. ...쓸데 없는데 돈 쓰지 말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