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om58
2003. 4. 20. 21:14

까미홈으로

두 남자랑 투닥거리다 보면 일주일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다. 개성도 성격도 생김새도 각기 다른 두 사람을 조화롭게 끌고 나가려면 중간에서 여러가지 역활도 해야하지만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어렸을적엔 아빠와 붕어빵처럼 닮았던 아들은 이제 식성, 성격, 외모까지 확연히 달라져 있다. 가끔은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부자지간이란게 놀랄 지경이다.
조금은 강박적이면서 완벽주의자인 남편과 세월좋게 태평하고 게으른 아들, 매사에 계획과 검토가 철저한 남편은 계획성이라곤 없이 즉흥적인데다 뒤가 야물지 못한 아들을 보기만 하면 답답하기 이를데 없나보다. 자연히 부자 사이엔 별다른 대화가 없는 상태다.
모처럼의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아들을 운전면허장에 데려다 주고 우리 부부도 시험장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앉었다. 아들의 차례가 되고 조금 느리게 출발한다 싶었는데 비교적 차분히 코스를 다 돌아 합격 판정을 받자, 아들은 덤덤한데 아빠가 오히려 감격에 겨워한다. 운전 면허도 시험인데 한번에 처억 붙어주니, 아들에게서 오랫만에 맛본 기쁨이긴 하다.
점심겸 세식구가 모여 식당을 찾았다. 각자 돌아다니니 그렇게 머리 마주하고 하는 식사도 오랫만이다. 그동안 아들의 얼굴을 대하면 으례 따라오던 잔소리와 책망 대신 기분좋은 격려가 오갔다. 도서실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남편의 얼굴은 계속 흐믓하고 대견한 표정이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우리 맘이 수선스럽게 흔들리는건 그동안 아들에 대한 기대를 너무 많이 버려서 그런지 모른다. 희망과 기대가 연속적으로 무너진 후에 말이다.
자전거 운동하기엔 날씨가 너무 흐리다. 전날 비가 온 뒤로 바람도 꽤 불어 그냥 걷기로 하고 남편과 나섰다. 불광천을 따라 한강 둔치로 가는 길 대신, 모래네 시장 쪽으로 인도를 따라 걸었다. 재래시장 구경도 하고 한바퀴 돌아오면 운동도 꽤 되리란 생각에서 였다.
오래된 불경기 탓인지 상인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토요일이라 사람은 많았지만 물건 사는 손은 적다. 그래도 좁은 통로를 따라 늘어선 물건들을 정리하는 굽은 손들과, 재래시장 특유의 쿰쿰한 냄새를 맡으며 걷자니 복잡하면서도 부산한 우리내 삶이 정겹게 느껴진다. 남편은 물건들 보랴, 가격 물어보랴, 먹음직한 음식들 앞에서 군침 삼키랴 좀체로 발걸음을 못 옮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추적 추적 나리기 시작했다. 물건을 담은 검정 비닐을 몇개씩 들고서도 우리는 천천히 걸어왔다. 배는 이미 시장 안 주점에서 잔뜩 채운 후였고, 비는 맞아도 좋을만큼만 오고 있었다. 기분 좋은 토요일 저녁이 가고 있었다.
딸아이가 전화할때 부쩍 짜증을 많이 낸다. 저는 아니라고 하지만 혼자 지내는게 무척 힘든 모양이다. 서울 생활이 재미있다고, 남편도 옆에 있어 나는 아쉬운게 없다고 너무 오래 혼자 팽개쳐 놓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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