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쿠버의 일상/기러기 이야기

벤쿠버에도 단풍이....

minimom58 2003. 9. 27. 12:02



까미홈







벤쿠버의 가을, 하늘은 높고, 구름 한 점 없으며 햇살은 맑고도 덥지 않아 좋다.
비 몇번 뿌리면 다시 맑은 날이 하루 있고, 다시 비오고 다음날은 언제 그랬드냐 싶게 또 맑고..
가을의 정취를 그대로 내뿜는 호숫가,아침에 깨면 베란다 창으로 향한다.
변함없이 나무 뒤로 숨어 있는 호수가 살짝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며 인사한다.
이제 커피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 볼 수 있다. 아름다운 가을이다.

기온차가 심하니 감기 들기 쉽상이어서 조카아인 기침에 열에 감기를 달고산다.
아침 일찍 시작되는 일과때문인지 침대에 누웠다 하면 곧 잠들어 버린다.
벼르던 신발장을 만든다고 아침 일찍부터 수선을 피우는데 중간에 선반이 모자란다.
전기톱이 없으니 가까운 권사님 댁에 뿌르르 달려가 길이 맞추어 나무 잘라달라고 하면서
전기 드릴도 빌려와 선반을 다니 그럴듯한 신발장이 완성이 되었다.
여기에 와서 혼자서 별일을 다해 본다.

이곳의 네 식구들은 다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조카와 아들아이는 학교가 시작되었고, 졸업후 대학을 준비하는 딸아인
시간여유가 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낮에는 샌드위치 샆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빡빡하게 tutoring 시간이 꽉 짜여져 있다.
유학온지 2년만에 별 짓을 다한다고 했지만 속으론 여간 뿌듯한게 아니다.
고맙다는 기도를 하면서 아들도 빨리 적응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떼썼다.
속도는 느려도 도망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도 정말 감사한 일인데...
빠릿빠릿 발전해가는 딸과 비교하며 욕심부리게 되니 엄마가 지나친 거겠지.

이곳 식구들과 달리 남편의 홀로 적응은 여전히 혼돈 상태다.
이사후 힘들어서인지 몸도 아프다고 하고, 외롭고 지친다고 한다.
채팅에서 매번 힘들다, 못살겠다...를 반복하니 걱정도 되는데다 답답해져
어쩌라는 거냐며 화내고 싸우기 일쑤다. 한사람이 갑자기 나가버리는 것으로 싸움이 끝난다.
"나도 힘들어."..이런 말은 이제 통하지도 않는다.
"당신은 아이들이 있잖어."...이렇게 돌아오니까.
한번은 자기 친구들 전화번호를 적으란다. 새로 이사했으니 이웃들도 잘 모르고
혼자 있으니 집에서 쓰러지거나 사고가 나도 아무도 모를거란다.
그 소리에 전화번호는 안들리고 눈물부터 나온다. 남편의 얼굴이 너무나 처량했다.

집안 정리에 도배에 카펫 청소에...해도 해도 끝나지 않던 일이 이제야 끝이 보인다.
너무 하얗기만 한 벽에 꽃장식 걸이를 만들어 붙여놓으니 아늑한 느낌이 난다.
횡했던 거실 벽난로 위에도 빨간 장미를 꽂아 놓았다. 따뜻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또한 꾸미고 붙이고 두드려 만드는 것들이 신명나기도 했다.

이번 주에는 구역 식구들이 속회 예배보러 모인다.
여러명이 큰소리로 찬송도 부르고 아이들도 함께와 쿵쾅거릴텐데
옆집 가브리엘 아줌마에게 미리 맛있는 음식을 뇌물 써서 입막음 해놓아야 할것 같다.
한국 음식 중에 좋아할만 한게 뭘지... 잡채나 빈대떡을 주면 보통 좋아들 하더만...
그러고보니 계속 교회에서만 맴돌고 있다. 영어는 쓸새도 없고 기회도 없고...
10월부터 공부한다고 맘먹은게 엊그제 일인데, 제대로 될라나 모르겠다.

예쁜 단풍색이 어우러진 호숫가를 창문으로 바라다만 본다.
운동을 한다면서 좀처럼 나가지지 않는다. 공부도 운동도 다음주부터는...그렇게 한달을 보냈다.
비가 오시기 전에 시작해야 될텐데...그러면서도 맘은 태평하다.
이곳의 느린 템포에 그저 몸을 맞긴 탓으로.....





흐르는 음악 ----- The Salley Gardens/임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