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om58
2004. 1. 17. 16:28

1월이 반이 가버렸다. 무기력해진 느낌에 자꾸 꺼져드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벤쿠버의 겨울 "우울증"을 또 앓고 있다. 중 무장을 하고 겨울을 맞았는데 이게 뭐람... 남편의 서울 생활도 나와 비슷하다. 일심동체라고 남편도 일종의 "우울증"을 앓는다.
나이 50을 바라보면서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는 것보다 뒤를 돌아다 보는 일이 많아진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지금 서 있는 자리를 한 다리로만 디딘채 편히 앉지도 못하고 있다. 누군가가 먼저 훌쩍 넘어가야 하는데 묶여 있는 끈 하나를 떨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남편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일기는 그래서 티가 나도록 다른 분위기라 한다.
친정어머님이 이제 거의 걷지 못하신다. 연세도 있지만 그토록 강인하신 분이었는데... 전화를 드리면 까랑까랑하게 울리던 목소리도 힘이 많이 빠져 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 놓으신 그 모습에서 나는 인생이라는 파노라마를 본다. 힘들고 고달펐어도 당당하셨던 젊은 어머님의 모습부터 지금의 모습까지.
소원했던 대학 동기들에게 요즘은 짧은 메일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암으로 투병하던 친구의 죽음후의 일이다. 모두들 삶에 대한 생각들을 새삼 한다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죽음은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허무하고 슬픈 일은 꼭 그 가르침이 있나 보다.
비가 몇 개월을 계속 부슬거리던 벤쿠버의 겨울이 변해 간다. 맑은 날이 제법 많고 서울처럼 비가 앗쌀하게 소나기처럼 쏟아 붓기도 한다. 비오는 날은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쇼핑몰을 천천히 걸으며 운동하고 맑은 날은 공원으로 간다. 그저 천천히 걷는게 제일 좋다. 공원을 혼자 걷거나 강가를 어슬렁 거리는 것도 이제 익숙하다. 가끔은 태엽 풀린 시계처럼 늘어져 있다, 벌떡 일어나 정신없이 집안 일을 하기도 한다 날씨를 닮아가나 보다. 개었다, 흐렸다...아니면 정말로 병이 들어 가나 보다...
남편은 혼자 생일을 맞았다. 미역국 대신 인스탄트 칼국수를 먹었다 한다. 캠에 대고 아들과 딸이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도 행복해 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호사스러운 편이다.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분잡함까지도. 그런데도 나는 가끔 남편에게 투정을 한다. 참 속 없는 마누라다. 그래도 아이들보다 남편이 만만하고 너그러우니 그것도 남편 팔자다. 컴퓨터 모니터에 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한참을 하소연하면 나도 기댈 곳이 있구나 하며 마음이 편해 진다.
우리 부부는 "그림의 떡" 이란 표현을 많이 한다. 모니터에는 있으나 옆에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몇 년 후 남편과 같이 지내게 되면 지금 이 시간이 많이 생각날 것이다. 가슴 아리게 사람을 그리워 하며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던 가를... 주름이 패이고 머리가 백발이 되면 그때보다 조금은 젊고 예뻤던 얼굴이 모니터에서 처럼 추억으로 동그랗게 떠오르며 지금의 그리움이 생각 날테지..
뒤돌아 볼 때 내가 살았던 모습이 조금이라도 덜 후회되려면, 또 예쁜 추억이 되려면 기운내고 일어 서 발자욱부터 크게 띄어야 할 것이다. 찬 공기도 한껏 들여 마시며. 자....구부려 앉은 몸부터 표보자....으라차....목소리 높여, 다시..으라찻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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