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건의 교통사고

2004. 11. 6. 05:33벤쿠버의 일상


 

 
 
 

아침에 학교에 가는 길에 가까운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나 보다.
차 한대가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가로등을 들이막고 앞 전체가 부서져 있었다.
차 모양으로 봐선 운전자가 꽤 다쳤을 것 같은데 나는 사람 걱정보다 먼저 차수리비가
몇천불이 나오겠는걸... 하는 어이없는 생각부터 드는 것이다.
벤쿠버도 교통사고 건수가 부쩍 늘었다.
 작년 겨울 나는 두 건의 교통 사고를 당했었다.
한번은 큰 길이 아니라 천천히 운행하다 사거리 정지 신호를 보고 차를 세웠는데 뒷차가
브레이크를 늦게 밟았는지 내차를 거의 접촉만 하는 수준으로 받았다.
내려서 확인해보니 아직 솜털도 보송보송한 남학생이다. 하이스쿨 학생이라고 했다.
창백해진 그 아이는 자기차가 아니라 엄마 차인데 큰일이라고 한숨부터 내쉰다.
확인해보니 그차의 번호판이 내차의 뒤에 닿으면서 살짝 나사 자욱이 파였다.
한국같으면 그저 보내겠지만 캐나다는 사정이 다르니 차번호와 그 아이 운전면허를
확인하여 적었다. 그 아인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견적을 받으면 ICBC로 연락전에
자신에게 얼마가 드는지 가격을 알려달라고 했다.
사실 이곳에선 자동차 사고가 나도 ICBC(BC자동차 보험 회사)에 연락만 하지, 가해자와
직접 전화 연락할 일은 없다.
어린 아이가 너무 걱정을 하니까 얼마 나오지 않을거라고 위로해 보내고 (사실 고치지 않
아도 될 정도라 생각해) 몇주후 견적을 받으니 뒷 범퍼 전체를 갈아야한다며 300불이 나온다고 한다.
망설이다 전화를 해보니 그 아이가 받는다. 액수를 들은 그 아이는 전화기에 대고 연방 한숨을 쉰다.
고등학생이니 몇백불이란 돈을 어떻게 감당할수 있겠는가? 마음이 안되어 견적을 몇군데 더 받아보고 연락주겠노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막상 고치지는 못하고, ICBC에 연락도 못하고 두어달을 넘기고 있었다.
 
 두번째 사고가 나던 날은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이었다. 
딸아이와 갑자기 나갈 일이 생겨 걱정을 하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우리집 근처의 언덕 길들이 모두
하얗게 눈으로 덮혀있어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몇번을 망설이다 나서게 된 길이다.
언덕길을 지나 평지로 들어섰을 때 눈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점점 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시속 30Km도 못내고 엉금엉금 기어가다 브레이크를 밟는데 길 옆으로 쭈~욱 바퀴가 돌아간다.
머릿 속이 하얗게되면서 엔진브레이크를 올리니 다행히 맨 가장자리 차선에서 차가 섰다.
휴~우 한숨을 쉬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을 끝내며 비상등을 켰는데 뒤에서 큰 충격음이
들리며 몸이 덜렁 들리는 느낌이 든다. 옆의 딸아이도 하얗게 질려있다.
뒷 차가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미끄러진 모양이다. 내려서 확인해보니 뒷 범퍼가 많이 들어가면서
뒷 문도 약간 찌그러져 있다. 뒷 차 운전대에선 30대 초반의 말끔한 차림의 캐나디언이 내린다.
별로 미안한 표정도 없이, 침착하게 지극히 사무적으로 자기 운전 면허증을 보여주곤 나한테도
운전면허증을 달란다. 조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애네들이 사고 내놓고는 왜 저리 당당해?
"사고는 니가 내놓고 왜 내 운전면허증은 달라니?" 소리가 조금 높으니 이 사람 더욱 침착하게
ICBC에 보고하려면 피해자인 내 인적사항도 필요하단다.
옆에 있던 딸아이도 쿡 치며 "엄마 그게 규정이래..."  내가  잘못 알아듣고 딴소리라도 하는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메모를 다 끝내고 이 젊은이 가면서 하는 말, "운전 조심해서 해."
영어로는 당연한 인삿말이였는데 나는 속으로 약이 올라왔다.
여하튼 오자마자 ICBC에 보고하니 그 곳에서도 뒷차가 100% 책임이라며 차를 고치라고 수리점을
지정해 주었다. 뒷문이 찌그러져 짐 칸이 열리지 않으니 불편하기도 했고, 이번에는 가해자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않아 그 이튿날 차를 맡기고 수리하는 몇일동안 렌트카를 이용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중에 아는 분에게 들으니 그 가해자 적어도 2000불은 넘게 냈으리라고 한다.
차 수리 비용과 렌트카 비용까지 함께 청구된다고 하니 말이다.
덕분에 첫 사고 낸 그 아이는 300불을 물지 않아도 되었다. 그건 순전히 자기 운이고 복이다.
 
캐나디언들은 이곳에서 자동차 사고가 느는 이유가 돈있는 이민자들이 많이 오면서, 그 젊은
자녀들이 좋은 차를 몰고 신호체계가 익숙치도 않은 이곳에도 부주의한 운전을 하기 때문이라 이야기 한다.
하긴 이제 어디를 가나 벤쿠버에는 아시안이 반이 넘는다. 특히 도심지일수록 그 현상은 도드라진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다. 벤쿠버는 이민자들의 도시이지, 진정한 캐나다 도시가 아니라고.
그런 현상들이 우리에게 좋은 점만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책임감과 함께 이제 주인의식도 조금
가져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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