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자리

2008. 6. 16. 11:16카테고리 없음


      우리네 민족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일 한심하게 생각한다.

        이민을 오면 남자들이 제일 힘들어 하는 것이 마땅한 비지니스를 찾기 전에 놀게 되는 기간을 보내는 일이다.

        죽어라고 일하고 가끔 저녁에 친구들과 한 잔의 회포 푸는 일뿐이 모르던 남자들이, 나갈 직장도 없이 일어나 밥상을 받을때 마음이 안절부절하다고 한다. 혹 아내와 아이들이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지는 않는지, 돌아서 그릇 닦는 부인이 그릇 소리라도 크게 내면 괜히 자신을 질타한다고 생각하고 자격지심에 수저를 놓고 일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같이 붙어있는 여자들도 나름대로 남편의 중압감을 덜어주기위해 파트타임 일을 찾아 (사실은 남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밖으로 나서고,(불행히도 남자들을 위한 job market은 여자들을 위한 것보다 훨씬 좁다.) 집에 남아 있는 남자는 자연스레 청소며, 집안 일들을 하며 가족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이런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존심에 파이는 상처가 깊어지고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자리 매김에 혼돈이 계속되면서 자괴감에 빠지게된다.

        남편이 밴쿠버에 머물때, 뒷 마당에 혼자 앉아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있다. 구실은 담배를 피우기 위함이라지만, 새벽에도 뒷문이 열리는 소리를 몇번씩 듣는 적이 있다. 무슨 생각이 저리 많을까?

      이웃에 사시는 분은 연세가 65세인데, 집에서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 한다. 페인트를 한다고 몇 주를 가구를 옮기고, 온 집안을 뒤집고… 그리고 일이 끝났는가 싶으면 다시 울타리를 바꾼다, 창고를 정리한다… 정도에 지나치게 일에 매달리다 어깨가 아프던지, 몸살이 오던지, 결국 몇 주는 아프다고 꼼짝도 못하고 앓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민족의 근면성이, 못말리는 일 중독증으로 남자들을 억압하는 굴레가 된것이다.

        
      남편이 서울에 간 이후 5월에 눈발이 날렸고, 뒷 마당에 자리한 남편의 의자에 소복히 쌓였던 눈은 내 마음까지 춥게 만들었다. 이제는 짙은 녹음과 색색의 꽃으로 한쪽으로 밀려난 남편의 자리, 그 곳에 닿은 나의 시선이 그리움과 안타까움에 가벼이 떨린다.

      언제쯤이면 남자들은 여유롭게 휴식하는 방법을 배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