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오리

2021. 4. 5. 16:59길냥이 이야기

https://youtu.be/jWggIHo8bg4

 

사계절 탄천을 지키는 수많은 오리 중에 특이하게 눈에 들어오는 커플이 있다.

두 녀석 다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가 크고 무늬가 예쁘다.

숫컷은 진한 갈색인데 멀리서 보면 새까맣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날개쭉지와 꼬리 쪽으로 오로라와 같이 영롱한 초록빛이 섞여있다.

암컷은 까만색과 하얀색이 섞여있는데 무늬가 흡사 꽃모양과 같아, 멀리서 보면 꽃무늬 프린트의 옷을 입은 듯 보인다.

아무튼 두 녀석은 늘 붙어있고, 딱 봐도 오리 중 대장이라 우리는 '대장'과 '대장부인'으로 불렀다.

작년 여름 계속된 비로 탄천이 넘칠때, 거세진 물살을 피해 비교적 잔잔한 곳으로 오리들을 이끄는 녀석들을 보고, 우리의 짐작대로 오리들 대장이고 리더임을 알았다.

그렇게 멋진 두 녀석을 보면 흐믓한 마음에 산책길이 더 즐겁고, 변함없이 붙어다니는 애정이 정겨웠다.

지난 늦은 가을 어느날부터인가 대장이 홀로 있었다. 풀숲 어딘가 대장부인도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이후부터 대장은 늘 혼자였다.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남편은 혼자있는 대장이 측은하고 불쌍해 보인다며 멀리서라도 보이기만하면,

"대장!" 소리쳐 부르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처음엔 남편의 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정신이 이상하다할까 서두르며 운동 길을 재촉했다.

그래도 매일 대장을 부르며 인사하는 남편의 일과도 계속댔고 그 민망함도 어느정도 익숙해져갔다.

그런데 올해 2월부터 남편의 부름에 녀석이 반응했다.

꼬리를 털고 남편쪽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이상한 만남이 이어지고, 아예 우리가 지날때쯤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대장을 볼수가 있다.

내가 부르는 소리에는 반응이 없는거로 봐선 남편의 목소리를 기억한다고 생각된다.

작은 아이들이지만 이렇게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억하는 것이 신기하다. 그저 흔한 오리라고 지나쳤으면 그뿐이었을 인연이 녀석이 마음을 열고 다가오니 서로에게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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