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바라는건...

2002. 9. 2. 22:34벤쿠버의 일상/기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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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 김성옥님의 작품에 흐르는 물방울만 추가해써요~~ *



며칠전부터 때늦은 태풍이 온다고 바람소리가 웅성이더니

창너머로 보이는 나무들이 휘청이도록 비바람이 요란스런 소리로 몰아쳤다.



아직 수해로 넋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또 비를 동반한 태풍이라니...

또 황토물에 잠긴 수확을 목전에 두었던 논밭들, 집터였는지 알수도 없는 토사로 뒤범벅된 폐허들...

어른머리만큼 탐스럽게 자랐던 사과랑 배들이 추석을 보내지도 못하고 흙탕물속에서 뒹굴어다니다니...

사람들 마음을 너무 아프게만 했던 이 여름은 끝마무리도 정말 참담하다.



날씨 탓인지 기분도 가라앉고, 뉴스에 펼쳐지는 걱정거리들에 덩달아 우울해지고 기운이 없다.

저녁운동도 슬슬 꾀가 나면서 남편 혼자 보내는 횟수가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가니 아이들도 걱정이다. 잘지낸다고는 하나, 직접 보기전에 마음이 안놓일 모양이다.

서울에 편히 있으니 벤쿠버에 남아있는 아이들 걱정이 되기 시작하면서 때론 안절부절이다.



1년동안의 벤쿠버 생활을 정리하면서 나는 생각했었다.

아이들에게도 성장의 기회가 될거라고, 다 큰 아이들에게 내가 도움이 되는게 아니라 의존적인 아이들로 만들뿐이라고...

지금 생각에도 그 결정은 옳았던거 같다. 하지만 딸처럼 씩씩하지 못하고 여리기만 한 아들은 갑작스런 독립이 금방 적응이 될리가 없다.



공부에 별다른 관심도,성의도 없던 아들을 유학보낸건 일종의 모험이다.

한편으론 딸이 신나게 적응을 잘해주니, 아들에게도 좋은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할까.

그러나 다른집에서 그런(공부에 관심이 없는)아들을 유학보낸다고 했으면 나도 혀를 차며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렸을거다.

막상 자기 자식에겐 객관적인 입장이 안되는건 부모로서 어쩔수 없나보다.



영어공부 시작한지 9개월째인 아들은 욕심도 별로 없이 지 성격대로 느긋하기만해 속이 탄다.

만 19살이면 캐나다에선 가정을 꾸리기도 할 나이고 독립하여 열심히 땀흘릴 때인데...

하긴 그 나이까지 서울에서 자랐으니 그런거는 바라지도 않는다 .



변화가 없는 태평함에 서운하고 밉기도 한데, 거기다 전화도 잘 안하는 아들을 두고 우리 부부는 서로 옆사람 닮았다고 밀어댄다.

그러다가 아들에게 전화가 오면 금방 맥없는 목소리가 가슴 아파 목이 멘다.

"잘 있는거지? 밥 잘먹는거지?" 남편이나 나나 이 말만 되풀이한다.



얼마전에 TV에서 정신지체아 아들을 가진 엄마의 생활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눈물을 적시는데, 남편이 그런다.

"우리 아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종의 정신지체아야....철이 늦게까지 안드는..."

근데 나는 무슨 소리냐고 반박도 못하고, 고개까지 끄덕인다.

두 아이를 똑같은 환경에서 키웠는데, 언제부턴가 딸아이는 강인하게,아들아이는 여리디 여리게 커졌다.



딸아이는 새학기엔 더 바쁘다. 영어학원에서 Assistance로 아르바이트도 한단다.

동물병원 봉사도 계속하겠다고 한다. 얄미울 정도로 잘하고 있다.

그러나 못난 자식에게 맘이 더 쏠리는게 부모다.



아들을 생각하면 맘이 아프지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듯 싶다.

문화적인 충격과 혼자있는 외로움도 익숙해지려면 조금 더 기다려 봐야겠지.

몸과 마음이 커지고 나면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서있던 우리부부에게 팔벌리며 안겨오지 않을까?

긴 인내심의 시간후에, 위의 사진같이 모진 빗속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예쁘고 알찬 열매가 되어서 말이다...


...우리 부부의 기도이며 소망이다.



***흐르는 음악: 조성모-잃어버린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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