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별....

2003. 1. 5. 14:48벤쿠버의 일상/기러기 이야기















딸아이가 있다간 보름의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비로서 식구끼리 남게 되나 했는데,

저녁 비행기라 일찍 미장원에 갔던 딸은 올때 친구들을 몰고 들어섰고,

점심을 차리고 설겆이를 끝내니 얼굴 들여다볼 새도 없이 공항으로 나설 시간이었다.

결국 식구끼리 있게된건 공항으로 향한 차안에서였는데,

왠일인지 셋다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달려가는 앞차창으로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딸아이가 오던 날도 눈이 왔었는데, 이젠 보내는 사람 맘을 위로하듯

굵어진 눈송이가 거센 바람으로 회오리쳐 퍼붓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딸과 사진 한장 같이 찍지를 못했다.

영종대교 휴계소에서 내려 한파같은 바람을 맞으며 아쉬운대로 몇장 찍었다.



손을 흔들고 딸이 탑승을 위해 들어간 후에야 남편과 둘이 남겨진게 실감났다.


2주를 넘게 있으면서 딸이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은 정말로 짧았다.

이제야 아이들이 불쑥 커버렸다는 것을 맘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만큼 부모 옆에서도 멀어져 있었다.

의연한 모습이기도 했는데 솔직히 서운했다면 부모의 욕심일 뿐일까....



돌아오며 흰눈으로 덮혀버린 풍경이 꽤나 쓸쓸해 보였다.

딸이 온다며 기다린 시간은 제법 길었는데, 왔다 간건 순식간이었다.

남편은 오랫만에 본 딸이 예쁘기만 했지만, 같이 1년 붙어 살았던 난 입장이 달랐다.



남자 아이같이 대범하면서 덜렁대는 어수선함이 훨씬 더해져 걱정을 샀고,

혼자 있으면서 간섭받지 않는 생활이 벌써 익숙해진 딸아이는

사랑의 표현과 관심이 잔소리로 이어지자 쓴 소리가 약이 되지만은 않았나보다.

그러니 예뻐하며 좋은 소리만 했던 남편보다 딸을 보내고난 후 허전함이 내가 더했으리라.

주차장에서 담배 한대로 서운함을 달래던 남편 옆에서 결국은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허한 마음 탓에 공항에서 돌아와 집 앞의 선술집에 들어갔다.

배도 채우고 술도 한잔 하면서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가 늦어서야 집으로 왔다.

커다란 가방을 여러개 들고 혼자 아파트로 들어갈 딸아이 걱정과

아들의 장래 걱정...그리고 이어진 옛날 이야기들...

1년만에 딸아이를 본 남편은 너무 커버렸다는 대견함과 그만큼

떠나보낼 날이 가까와졌다는 서운함이 같이 들더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벌써 떠나보내는 연습은 충분히 한거 아닐까. 그런데 부모는 그 적응이 느리기만 하다.



전화소리에, 쾅쾅거리며 벌컥벌컥 문을 열고 다니던 딸아이의 소란함이

메아리조차 없이 집의 깊은 정막함으로 잠겨버렸다.

우리는 추운 베란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늦도록 앉아 있었다.



어쨌든 남편과 나는 다시 한가로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음악을 틀어놓고 맘껏 게으름을 피우며 주말을 맞았다.



우리 가족은 너무나 많은 이별의 예행연습을 하나보다.

그러나 아무리 반복되어도 이별엔 익숙해지진 않을것 같다.

잠시 손을 잡았다 놓치면 마음속으로 그리움은 자꾸 커져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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