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매들 이야기

2003. 8. 21. 13:48벤쿠버의 일상/기러기 이야기



까미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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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보고싶다. 올래?"라고 한마디 했는데, 앞뒤도 가리지 못하고 서울에 날라왔다.
이사 준비도 해야하고 아이들도 학교에 학원에 분주한데 이성보다 내 감정만 앞섰다.
말한마디 잘못했다가 비행기 삯 덤태기 쓴 남편은 공항에서 나를 보자 웃음만 흘린다.
마침 독일에 사는 셋째 언니가 형부랑 엄마를 뵌다고 나와 있어 핑계거리가 되었다.

이튿날부터 친정 어머님을 뵙고 언니들과 뭉쳐 다녔다.
오랫만에 공주에 있는 친정아버지 산소도 찾아뵈었다.
가파른 선산을 올라 다다른 산소엔 35년이 넘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쌓였다.
몇년전 여문 밤들이 떨어져 있던 가을에 잠깐 와보곤 못와본 길이다.
그때만 해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지 엉기성기한 봉분의 모습이 눈에 섧다.
못살던 시절, 그 가난을 다 껴앉고 가셨던 그대로 돌비석에 이름과 성씨만 남아있다.
공주 시내에서도 깊숙이 들어가는 산골에 본인이 사놓으셨던 산자락 높은 곳을
생전에 명당 자리라고 지정해 주셨단다. 그토록 가파른 곳에 누워 계신게 편안하신가 보다.
몇년 전부터 우리 자매들은 편안한 공원 묘지로 이장하는 문제를 의논해왔다.
그러나 쉽게 결론내지 못하는 문제다.

주위의 나무들이 많이 자라 그늘을 만드니 봉분에 있는 때들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언니들이 향을 피우고 간단한 제를 준비한 후 차례로 절을 했다.
독일에서 사는 셋째 언니는 독일인인 형부와 함께 너무도 자연스레 제를 지낸다.
넷째언니네 내외도 절을 했는데, 우리 내외는 잠깐 서서 기도만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서울로 오는 중간에 충북 진천에 있는 납골당에 들렀다.
평생의 반이상을 병원에서 지내며 정말 복없이 살았던 우리 큰언니가 있는 곳이다.
이젠 유골함과 한칸 서랍으로만 남겨져 있다. 길디 긴 여정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공간이다.
번호로 찾아 들어가니 조카들이 왔을때 남겨 놓았는지 언니의 젊을적 사진이 한켠에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영화배우냐고 물을 정도로 미인의 모습이다.
독일 언니가 못내 울음을 터뜨렸다. 내 마음도 저린건 당연하다.
나보다 18살 많았던 큰 언니는 나를 업어서 키웠다.

다시 친정어머님을 찾아뵙고 언니들과 옛날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 가난할적 이야기가 이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고 아련하다.
생활비 부치겠다고 30여년전 독일로 떠났던 언니가 그때 고생한 이야기를 처음 한다.
야간 근무를 하면 수당을 많이 받는다고 쉬는 날마다 더블로 근무해서 번 돈을
송금한 이야기... 그것도 모르고 나는 얼마나 풍족하게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지..
지금은 독일의 큰 회사에서 회계 감리사로 일하고 있는 언니의 이야기는
70년대 전형적인 "굳센 우리의 금순이" 이야기이다.
세상에 둘도 없이 착한 독일인 형부와의 만남은 그 고생에 대한 보답인 것 같다.

서울의 모습은 언제나 정겹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니까.
풍성한 식탁과 부글부글 끓는 듯한 인파와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서울과 벤쿠버,두 도시가 다 좋다.
언니들에게 큰 소리쳐 놓았다. 내년에는 벤쿠버로 다 모여.
다리가 다 휘어버리신 우리 친정 어머님의 눈도 빤짝거린다.
"비행기만 태워주면 나도 갈수 있어."
검은 머리가 다시 나신다는 우리 어머님, 백수(100살)도 거뜬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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