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쨋든 네식구

2003. 8. 17. 02:05벤쿠버의 일상/기러기 이야기






까미홈











































    남편이 떠나고 나서 다시 아이들과 남았다.
    6개월동안 같이 지냈던 후라 태연할수 있을줄 알았는데 역시 이별은 면역성이 없다.
    친구 말대로 부부 정이 넘쳐서가 아니고, 혼자 모든걸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불안함을 보이면 안된다는 강박감, 아빠의 역활까지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
    이런 모든 것들이 버겁기 때문일거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라 마음을 다져 먹고 집안 정리를 수선스레 시작했다.
    좁아도 이사할 때까지 뭉쳐지내려면 거실에 늘어놓은 짐들을 치워야했다.
    저녁 늦게까지 치운 덕에 집안은 아주 말끔해졌다.
    한가하고 여유스럽던 6개월의 휴가가 끝나고 이제 정말 제다운 전투가 시작된것 같다.
    각기 다른 성격의 세 아이들(?..다 성인이다.)과 치루나갈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19살의 우리 딸아이, 지 공부하는게 무슨 벼슬인지, 팅팅대며 심술이 나있다.
    속이 깊고 생각도 올곧고 사려깊다고 내심 자랑을 했었는데, 화급한 성격에
    공부 잘하는거 하나 믿고 성질 다 부리며 살아가는 모양이 걱정된다..

    20살의 우리 아들, 느리고 답답해서 속은 터지는데 본인은 여유롭다.
    믿는게 뭔가 있는지, 세월이 지만 비껴갈거라 생각하는지..
    집에서 쫓겨 나지 않는다면 9월 학기 개강까지는 완전한 백수로 지낼 심산이다.

    23살의 조카는 우리 아이들이 못가진 참을성을 갖췄다.
    긍정적이고 너그러운 심성을 가져 이모를 잘 도와주고 중간 역활도 잘해낸다.
    대책없이 어지러대는 딸아이를 잘 구슬러 치워놓고 정리해 놓고
    나 없으면 밥 차려먹기 싫어 굶기 일쑤인 아들녀석 식사도 해결해 놓는다.
    여하튼 각기 다른 성격의 네식구가 좁은 곳에서 부벼대며 사는것도 나쁘지 만은 않다.
    그래도 불편한게 한두개가 아닌데, 아직은 모두들 잘 참고 있는 편이다.
    마음에 드는 집이 없어 이사 결정을 못했으니 이렇게 복닦거리는 생활이
    두어달 이상 계속 될거고, 아마도 우리 아이들이 인내를 배울 좋은 기회가 될것이다.

    맑은 날씨가 계속되더니 오늘은 비가 한바탕 내렸다.
    어제부터 여름같지 않게 선선했는데 오늘은 따뜻한 아랫목이 생각날 정도다.
    그래도 여름에 이따끔씩 오는 비는 반갑고 정감있다. 우울해 지지도 않고.
    벤쿠버의 겨울을 지내기 전까지는 끔찍하게도 비를 좋아했다.
    지붕으로 부딪히며 소란스레 우다닥거리다가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소리의
    리듬이 반복되며 나는 물의 소리, 창문에 몇시간을 매달려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남편이 가기전에 세식구의 옷자락을 끌다시피 하고 사진관에 갔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시절에 찍은후 12년만에 찍은 가족 사진이다.
    모두들 마지못해 따라 나서더니 사진을 찍은 후엔 잘했다고 기분들이 좋아졌다.
    이사가면 거실에 가족사진을 멋지게 걸어놓을 생각에 벌써 실실 웃음이 난다.

    여름을 충분히 즐겨 놓아야 겨울을 지낼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마음이 전보다 여유롭다. 여러가지로 무뎌진 탓도 있겠지만.
    이렇게 이곳에서의 생활도 자리를 잡아가고, 느릿한 캐나디언 아줌마의 생활방식도 몸에 배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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