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

2003. 7. 13. 06:32벤쿠버의 일상/기러기 이야기




까미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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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한숨 소리가 잦아졌다.
    아이들과 함께 투다닥 거리며 지내는 나야 무슨 걱정이랴.
    혼자 이야기할 사람 없는 생활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데, 힘들단다.
    그래도 잘 참고 좀처럼 힘들다고 불평하진 않았는데,
    요사인 화상으로 만나면 한숨부터 쉰다.
    ...씨이...이게 뭐냐...나는 돈만 버는 기계냐...씨이...
    아이한테 사탕을 줬다가 한창 단맛에 젖었을때 다시 뺏은 격이다.
    바쁘게 지내며 나름대로 이곳 생활에 재미 부치리라 맘먹었던 나도
    덩달아 맘이 불편해 지는건 당연지사다.
    남편과 나의 유일한 낙은 카메라로 얼굴보며 이야기하는 화상채팅이다.
    채팅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서로 하루 일을 보고하며 잘했느니, 왜 그랬느니
    참견하다가 가끔씩 옆에 있는 사람처럼 사소한 걸로 티걱거리기도 한다.
    남편 말대로 화상 채팅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우린 꽤나 갑갑했을것이다.

    오랫만에 친한 집사님과 함께 강가를 걸었다.
    강가를 따라 예쁜 꽃들이 화단을 차지하고 있었다.
    꽃, 나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는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집사님 덕분에
    몇가지 이름을 외울수 있었다.
    꽃 얼굴들을 그리 자세히 보기는 처음인듯 하다.
    그러고 보니 작은 꽃들도 자세히 보면 그 모습이 찬란할 정도로 예쁘다.
    벤쿠버에는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이 강가의 산책로는 유난히 정감이 있다.
    세련되지도 수려하지도 않지만 오래되고 느릿한 그 풍경이 여유롭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마냥 강물을 바라만 보는 노인들처럼
    강물의 흐름도 배의 흐름도 정지한것마냥 그 자리에 있다.

    기러기 아빠로 지내는 남편의 입장이 제일 딱하다.
    경제적인 무게와 생활의 불편함은 감수한다고 하여도 외로움으로 시려질
    마음의 아픔도 고스란히 혼자의 몫으로 견뎌내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랴.

    오랫동안 돌아 다시 제자리에 섰지만 분명히 지난번의 시작과는 다르다.
    정지된듯 느릿한 강물도 바다로 흘러가 구름으로 올랐다가, 다시 비가 되어
    강으로 흘러들길 여러번 반복 했으리라.
    모래가 깎였다 다시 쌓여가듯 태평한 아들에게도 시간은 그냥 가버린게 아니라
    그 삶안에 깍이기도 하고 채우기도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한 공간에서 큰 아이들 셋과 복닥거리며 사는것도 한 달반이 지났다.
    이제 불편한 것은 불편한대로 또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각자의 생활에 익숙하다.
    겨울 옷부터 박스에 채워 미리 짐을 싼다고 베란다에 가득 짐을 어질러 놓았다.
    남편없이 이삿짐 꾸리는 것도 별로 겁이 안난다. 이곳에서는 모두 내 몫일 뿐이다.

    토요일이라고 아이들은 늘어지게 잠을 잔다.
    오늘도 벤쿠버는 파란 하늘이 잉크빛처럼 맑고 투명하다.
    오후에는 바닷가로 바람 쐬러 가야겠다. 아들 운전도 가르칠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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