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산 가족으로...

2003. 5. 10. 19:57벤쿠버의 일상/기러기 이야기





까미홈









    이제 어느 모임을 가던간에 왕언니 대접을 받는다.
    그네들 입에서 주저없이 나오는 '언니야' 소리는 어디가나 익숙해졌다.
    하기야 살아온 세월이 몇년 빠지는 반세기니 이게 보통 긴 세월이랴.
    그래도 마음 한편으론 서운하고 울적한 것이 없지만은 않다.
    내게는 빨리만 온것 같은 중년의 세월인데 그나마 지체없이 내달려 봄도 끝자락이다.

    비가 많이 온 날은 서울의 야경이 선명하도록 선이 살아있다.
    북한산 봉우리마다 분명한 모습으로 하늘을 가르고 있고,
    잘 안보이던 남산타워도 모양새 또렷하게 아파트 사이로 보인다.
    눈이 시원해진 느낌이다. 비가 그치면 여름이 바싹 다가설 것이다.

    몇달동안 서울에서의 백수생활이 너무도 자연스레 몸에 밴 아들은
    여러가지 설계를 세우고 다시 캐나다로 출발하려던 우리의 계획과 또 어긋나고 있다.
    짐을 꾸린다고 가방들을 꺼내놓은 거실만 어지러운데, 나는 통 머리가 정돈이 안된다.
    새벽까지 베란다에 앉아 찬바람에 머리를 식혀도, 별다른 해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머리는 미숙해도 나이는 찰대로 찼으니 그저 하는대로 버려두는 수밖에
    나중에 후회하며 땅을 치고 좋은 길 안내해주던 부모 생각하며 눈물흘리면 그 뿐일테니 ...

    지난해 5월, 우리 부부는 결혼 20주년을 서울과 벤쿠버에서 떨어져 맞았다.
    그래서 올해 결혼기념일에는 사진이라도 찍자고, 뭔가 이벤트를 하자고 했는데...
    유난히 사진 찍는걸 싫어하는 남편은 결국 딸아이랑 모였을때 가족사진 찍자고 하며
    또 미뤘다. 이렇게 10여년을 가족 사진을 못 찍고 있다.
    그래도 이번 결혼기념일엔 같이 있으니 즐겁고 감사할 뿐이다.
    날씨까지 좋아 교외로 드라이브한 후, 예쁜 찻집에서 저녁까지 하고 왔으니,
    나이든 부부치고는 기분은 다 낸 셈이다.
    커피마시며 아들 걱정을 늘어지게 하게되어 결말이야 그랬지만....

    딸아이가 감기를 단단히 치루나보다.
    목소리가 잠겨 통화를 한후 남편의 마음이 안좋은 것같다.
    다시 혼자 남을 생각에 힘들어 하다가도 아이들때문에 가라고 재촉하기도 하는
    남편의 팔자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유학이란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모두 편안했을텐데..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으니 잃은 거에 대한 미련은 버리자.

    모질게 아이들만 남기고 돌아올땐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고생도 해보면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 질테지...했는데 진작 아이들은 의연해도
    우리가 안절부절 맘을 못놓고 걱정에, 한숨에...그랬다.
    1년도 못되어 다시 어정쩡한 분단 가족으로 돌아가자는게
    남편과 아이들 때문에 맘앓이를 하면서 얻어진 지금의 결론이다.

    기러기 아빠로 남겨질 남편을 위해 냉장고 정리며 할건 많은데 몸부터 쳐져온다.
    떠나기 전에 남편 손을 끌고 사진관부터 다녀와야겠다.







'벤쿠버의 일상 > 기러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러기 아빠  (0) 2003.07.13
복? 팔자?  (0) 2003.05.16
큰 아들, 작은 아들  (0) 2003.04.26
닮지 않은 부자...  (0) 2003.04.20
봄날의 저녁  (0) 2003.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