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보내기

2003. 7. 19. 15:49벤쿠버의 일상/기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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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낮시간을 교회분들과 지내는 일이 많다.
같이 점심하고 강가를 한번 걷고, 그러다 이집 저집 한번씩 가서
바베큐도 얻어먹고, 꽃 심어놓은 모양들을 기웃거리며 참견도 한다.
어디를 가든 한국에서처럼 새집에 새 가구로 말끔히 치창된 집은 없다.
오래된 가구들이 몇십년전부터 지켰을 그 자리에 편하게 자리잡고
나이든 문과 벽들도 주인의 정성스런 돌봄으로 몇번이고 반복되었던
칠의 자욱이 선명하다. 거기에 구석구석 손때 묻히며 닦아주었을 조그만 장식품들.
그래도 서울의 깨끗하고 넓은 아파트보다 훨씬 풍요로워 보이는 것은
주인들 손을 타고 그 성격대로 꾸며진 마당이 있어서 일거다.

유난히 정원 꾸미기를 좋아하시는 분이어선지 오늘 방문한 집의 뒷마당은
벤쿠버의 화사한 여름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잘 꾸며진 썬택에서 호사스런 점심을 하고 등나무 밑의 그늘에서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장미 향기에 취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그러고보니 요사인 계속 얻어 먹고만 다닌다. 그걸 좋은 말로는 먹을 복이라 하나?
모처럼 사겠다고 맘먹으면 이야기 꺼내기도 전에 다른 분들이 "내가 살께" 해버린다.
서울처럼 흥청망청 하진 않아도 그 특유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이곳의 장점이다.
새집에 들어가 그 신세 다 갚으려면 몇주는 불러대야 할텐데...
그래도 즐거울 것같다.

이곳에서 이렇게 즐겁게 잘 지내면 괜히 남편에게 미안해진다.
외롭게 지내도 남편이 걱정되겠지만 너무 잘지내고 있으면 또 섭섭할거다.
즐겁고 재미있었던 일은 되도록 짧게 보고한다. "당신이 없어서 섭섭했어.."
이런 말도 곁들여 주고. 이제 양쪽 생활에 적응이 되어간다고 할까...

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부대끼며 때론 내 맘같지 않은 아이들에게 실망하고 서운해 하며,
상한 맘을 어쩌지 못해 욕실에 샤워기를 튼채 앉아 있기도 하지만,
그것도 밤에 한 공간에 누워 자다보면 금새 풀어지고 만다.
아들과 딸도 훨씬 밀접해진 느낌이다. 성격이 확연히 다른 두 아이가
나란히 앉아 게임도 하고 낄낄대며 즐겁다. 예전엔 별로 못보던 모습이다.
남편은 불편해도 한 방에 오랫동안 살면 가족간의 정도 두터워질거라며
6개월만 더 그러고 살라고 나를 약올리기도 한다.

오늘 한 낮의 수은주는 29도를 가르켰다.
한국의 여름에 비하면 양반인 셈인데도, 햇살에 서면 탈 정도로 뜨겁다.
장마 비가 오락가락하며 끈적끈적 더울 서울의 여름 속에서도
가장의 굴레를 지고 불평없이 생활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이 더위도 감사하다.

까미홈



배경음악----Summer Snow/Sarah brigh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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