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계속 내린다. 동네가 하얗게 카드 안의 풍경처럼 눈을 짊어지고 있다.
바튼 언덕 동네 길이 온통 얼어붙어 빙판이라 차는 얌전히 차고에서 자고 있다.
쌓인 눈도 밟으며 운동하자고 털 모자에 장화에 단단히 무장을 하고 나섰다.
눈이 아직도 내리는 중이었는데, 설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10여분 정도는 걸을만 했다.
그 후로는....대책없이 종아리까지 빠지는 눈 길을 40여분 걸었더니 기진 맥진이다.
양말은 다 젖어 발꿈치부터 얼어왔다. 일년내내 앓지 않던 감기를 한꺼번에 치룰 것만 같았다.
집 안에 들어서자 마자 양말을 벗고 전기 장판을 뜨겁게 달군후 누워버렸다.
딸아이의 분주한 발걸음에 깨어난 것은 두어 시간이 지난 후며 몸은 좀 풀린 듯 하다.
우리집에서 항상 제일 분주한 사람은 딸아이다. 친구도 많고 활동적이기도 하니
모임마다 빠지는 곳이 없고, 들락 달락 뽈뽈...걸음걸이도 빠르다.
여하튼 올해도 감기 앓이 한번없이 넘어가게 생겼다.
가끔씩 마음앓이를 하면 열이 나면서 몸살처럼 오는 감기는 빼고 말이다.
남편과 각각 다른 곳에서 다른 시간으로 새해를 맞고 이제 시작된 2004년,
아직도 남편과 나는 갈팡질팡 흔들리며 표류하고 있는 배 위에 있다.
아이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 곳에 뿌리내리는 사이에도 그 혼돈은 계속된다.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 많은 한 카페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대체로 밝지 않다.
6년, 10년의 경력이 있는 기러기들도 시간이 지나는 것과 상관없이
노련해 지지도 익숙해 지지도 않는 생활이다.
서울에서 암으로 2년 넘게 투병하던 대학 동창생이 해를 못 넘기고 갔다.
결혼도 하지 않고 일에만 묻혀 살던 친구다. 여름에 병원에서 만났을때
하루종일 계속대는 통증에도 밝은 웃음을 보여 주며 농담을 건넸었다.
그 소식을 메일로 받고도 기도하면서 눈물도 나지 않았으니 너무 허망했나 보다.
아니, 그 친구가 고통에서부터 풀려나 평안해진 것을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울이 깊어짐은 손목이 시려서가 아니라 마음이 추워져 느낄 수 있다.
너무나 조용하게 겨울을 보내고 있는 우리 아들의 마음도 그래서 일까?
소리지르고 야단스럽게 웃어 대는 딸아이와 자신의 세계에 빠져
말을 닫고 사는 아들아이 중 누가 더 힘들지는 뻔한 이야기다.
겨울은 사람을 성숙시켜 줄 것이다. 나와 아들과 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