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2)

2004. 5. 29. 03:50벤쿠버의 일상

 

 

두 번째는 바로 며칠 전에 생겼다.

진료를 받기 위해 접수를 하는데, 주치의가 누구냐고 묻는다.

 나는 그저 "DR. WANG" 이라고만 대답했고, 예약된 시간에 진료실에서

의사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우리 가족의 주치의는 중국인 남자 의사인데, 아주 사무적이고

정중하며 유모스러운 면은 거의 없어 좀 어려운 편이다.

거기다 정통 캐나다식 영어를 구사하는 의사는 내가 하는 영어를 잘 못

알아 듣는다. 몇 마디 듣다 얼굴을 찌푸리며 자꾸,

“What did you say?” 를 반복하니 나도 입을 다물고 할 말을 못하기 일쑤다.

 자연히 진료 받을때마다 약간은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날따라 할 말이

많아 마음 속으로 영어 문장을 만들며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의사가 인사를 하며 들어서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랑 동감쯤 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중국인 여자 의사다.

 

 잠깐 당황하고 있는데 의사는 벌써 자리잡고 앉아 불편한 곳을 묻는다.

증상들을 이야기하며 의사의 가운에 붙은 명찰을 보니 "DR. J. WANG"

이라 써있다.

그 순간 나는 상황을 알아차렸다. 내가 가는 병원은 6-7명의 의사가 같이

진료를 하는 곳이다.

이곳은 한국과 달리 환자의 챠트에 주치의 이름이 붙어 다니는 것이

아니고, 진료시 환자에게 담당 의사의 이름을 물어 스케쥴을 잡아

의사 진료 명단 에 껴넣는 것이다.

 여하튼 나의 영어를 훨씬 잘 알아듣고, 섬세하고,

설명도 잘해주는 중국인 의사가

싫을 이유가 없었다. 의사도 아시아인 특유의 액센트가 그대로 남아있는

영어라 알아듣기도 수월하다.

분위기가 편안해지자 말을 더 잘나왔다.

내친 김에 그 동안 말못하던 부인과 검사도 받았다.

진료후 검사 용지를 받아들고 나오며 나는 웃음이 터졌다. 우리 주님은 캐

나다의 이런 조그만 헛점을 이용해 나를 더 잘 맞는 의사에게 살짝

바꿔치기해 주신 것 이다.

이 얼마나 재미있고 익살스런 축복이랴. 역시 한국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

이지만 환자의 말을 100% 신임하는 그들의 문화도 헛점 투성이라 이야기할

수만은 없었다.

 

 이민 생활을 적응하며 어려움만 있다면 너무 우울해질 것이다. 이렇듯 이 곳 생활은 가끔은 우리에게 실소와 또 서울 한 가운데서는 가져보지 못한 유쾌함을 준다. 그런 것들이 조금씩 원동력이 되어 우리 가족이 원만한 이 곳 구성원으로 섞여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벤쿠버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뒷마당으로 보이는 풍경  (0) 2004.10.10
캐나다의 자녀교육  (0) 2004.07.10
한국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  (0) 2004.05.27
다른 세상을 꿈꾸며  (0) 2004.04.10
봄을 돌아보며...  (0) 2004.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