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까지 기어이 쫓아온 남편의 손을 잠시 잡는데, 카트가 움직이며 손이 놓쳐진다. 남편의 둥근 얼굴이 금세 사라지고, 흰색의 천장만 보이다 녹색 가운의 의사얼굴이 나를 보고 손을 올린다. 이웃집 아저씨의 친근한 미소네…. 생각하는 동안 벌써 기억이 하얗게 지워진다. 그리고 긴 수술시간 동안 나는 꿈을 꿨다. 어느 날, 19살의 건장하고 아름다운 청년이 입원했다. 병명은 왼쪽 허벅지의 골육종으로 기인한 말기 암이었다. 얼마 후 시작된 약물치료는 너무도 혹독한 것이어서심한 메시꺼움과 토악증으로 청년의 얼굴은 창백하게 꺼져가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청년의 한 가닥 희망은 약물치료가 끝나 병변이 줄어들면 수술을 할 수있으리란 것이었다. 그 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4달이 넘는 동안의 무섭고 긴약물치료를 끝낸 청년은 혹독한 치료중의 고통도 잊은 듯 가끔씩 미소도 지으며 진단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종합 진단 결과가 나오는 아침, 옆에 있는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도 움직임이하나 없이 의사의 입만 주시 하고 있었다. 의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폐에 있는 덩어리가 안 줄었어. 유일한 방법은 다시 약물 치료를 하는 거야.” 청년의 눈이 절망으로 감겨버렸다. 그 날 이후 청년은 하루 종일 이불을 쓰고 돌아누워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신음과 울음소리도 없이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물론 약물치료도 거부했다. 간호사들이 아침 인계 때마다 그 아이 걱정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며칠째 들어가 보면 마른 등 줄기가 약하게 오르내리는 외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치료도 다 거부하고 있으니 의사들은 퇴원을 하라고 했다. 말을 해도 대답이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사무실에서 퇴근 전에 편지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지 막막했지만 몇 자 적어 그 아이의 침상 머리에 놓고 퇴근했다. “그저 포기하기 보다는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자. 맘 아파 하던 모든 분들이 같이 기도해 줄거야. 나도 물론 기도 할께.” 그런 내용들이었다고 기억된다. 다음 날 그 방에 들어 섰을 때 그 아이가 아침 식사를 하다 환한 미소를 보였다.“선생님, 저 약물치료 다시 받을래요.” 그 이후의 치료 과정은 앞의 것보다 훨씬 길고 지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기적처럼 일어났다. 허벅지 절단 수술을 거친 후 놀라운 힘으로 힘든 방사선 치료까지마친 후 퇴원을 했다. 그리고 몇 달에 한 번씩 아름답고 건강한 청년의 모습으로 병동을 방문하여 우리들을 기쁘게 했다. 그 후로도 많은 아이들이 골육종으로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며 우리들을 절망감과 뿌듯한 보람감의 곡선을 오르내리게 했지만 그 아이의 방문은 항상 기분 좋은 것이었다. 23살의 눈부신 청년의 모습까지는…. 그 아이의 마지막 소식은 다른 병동으로 옮긴 후 들었다. 재발된 암세포가 온 몸으로 퍼져있어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고. 마취가 깨어나면서 하얀 천정이 눈을 감을 때마다 떠다녔다. 입을 열은 것 같은데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남편의 얼굴이 보였는데 나는 다시 잠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사흘의 짧은 입원 기간 동안 난 예전의 기억들을 반복하여 꺼내고 있었다.왜 이제야 그 얼굴들이 자꾸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내가 환자복을 입고 병실 안에 누워있으니 그러나 보다. .수술 이튿날부터 운동을 한다고 복도를 돌다가 버나비 마운틴이 보이는 넓은 창가의휴게실을 발견하였다.낮 시간을 그 곳에 앉아 보내곤 했는데, 푸른 하늘과 산과 주택들이 다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그 곳에 앉아 있으면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그 아이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눈부신 천사의 모습일… 그 아이들. 내가 같이 울고 웃었던 수 많은 환자들이었는데, 나는 그 아이들에게 갖고 계시던 주님의 뜻을 아직도 헤아리지 못한다. 따뜻한 햇볕을 받고 있으니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마웠다.느닷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배에 상처가 났을 뿐 대단치 않은 수술이었는데, 다들 걱정해도 혼자서 용감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어도 겁이 났던 것이 사실이었나 보다. 그러니 예전에 그 아이들이 느꼈던 고통이 얼마나 깊고 절망적인 것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짐작할 수가 없다. 이제 수술 후 두주가 지나고 있다. 배의 상처도 많이 아물었고 허리둘레도 소망하던대로 조금 줄었다. 한 두 달이 지나면 까맣게 기억에서 지워질지도 모르겠다.그러나 늘 건강하다고 자만하던 나에게 환자로서의 경험은 새로운 위치에서의 시각을 갖게해 준 좋은 기억이었다. 뭐든지 완벽한 것은 없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과거 일도 돌아보면 다시 했어야 할 일이 옆에 있듯이…. 그러니 항상 겸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 다음 예쁜 천사들이 된 그 아이들을 만날 때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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