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0. 24. 08:17ㆍ벤쿠버의 일상
(웬 이상한 사진이냐고? 삼십년이 훨씬 넘은 사진인데
잘보면 너랑 꼭 닮았다.)
어제부터 왠일인지 맥을 추지 못하고 일찍 잠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금요일이라 일주일 간의 긴장이 풀려 버렸나 보다. 아침에 눈을 뜨니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고 있더라. 잠을 푹 잔 뒤라 기분도 좋았지. 너한테 전화를 할까 하다 혹 늦게까지 시험 공부했으면 단잠에 방해될까 조심스러워 그만두었다. 그러던 중에 네가 전화를 했구나. 많이 힘든 목소리에 실컷 자고 난 엄마가 괜히 미안하더라. 네 목소리가 젖어있어 엄마 마음도 아프더구나. 대학 생활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거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다른 사람들은 딸래미가 명랑하고 한없이 재미있는 아이라고 생각하지만 엄마가 보는 우리 딸래미는 아빠를 닮아 철저한 완벽주의자라는걸 잘 알지. 그러니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을 테고 공부도 그렇게 해내야 하니 스스로 자신을 얼마나 채칙질 하겠니? 엄마가 예전에 한 말 생각나니? 너한테 최고가 되라고 하지 않았지. 그저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너무 욕심내지 말거라.
다행히 중간 시험이 끝나서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겠구나. 다 잊고 하루 이틀은 푹 쉬거라.
한국에서 대학을 들어갔으면 지금쯤 놀러 다닌다, 미팅하러 다닌다며 바쁠 때인데(엄마의 경험이지…) 빵 한쪽으로 끼니 때워가며 새벽까지 공부하는 너를 생각하니 정말 안타깝다.
토론토에 같이 있을 때 햇반이랑, 김 종류라도 챙겨줄 생각을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고.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거리라면 맛있는 밑반찬을 몇 번이고 챙겨갔으련만….
네가 기도 많이 해달라고 할 때마다 엄마는 부끄러워 지는구나. 아빠도 오빠도 엄마의 기도가 많이 필요할텐데, 엄마 일에 쫓겨 다니느라 왜 그리 바쁜지. 차분한 마음으로 정돈하며 기도하지를 못한다.
그나저나 우리 딸래미 강한 줄만 알았는데 요사이처럼 자주 울면 별명 붙여버린다.
“울보 때지……”,
근데 제대로 먹지 못한지 꽤 되어서 삐~적 마른거 아닌지 모르겠다.
요사인 네 방을 지나다가 한번씩 들어가 본다. 네가 없으니 어지는 사람이 없이 늘 깨끗한데, 썰렁한 기운에 벽에 있는 네 사진만 한번 들여다 보다 나온다.
민희야,
엄마가 기도 많이 할께. 바빠도 교회 생활 열심히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겨울 방학에 보자꾸나. 네가 원하던 그 곳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 좋은 친구들 만난 것, 주위를 보면 감사할 것이 더욱 많을거다. 잊지 말거라. 주님이 사랑하는 딸이라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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