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은 얼기설기한 울타리 사이로도 이웃의 모습이 보인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모여서 같이 장을 담그거나 김치를 담그며
소소한 일들이 입담으로 풀어져 나오고 훈수로 한마디 씩 쏟아져 나오는 수선함에
아줌마들은 뱃속으로부터 웃음소리를 터쳐내며 고된 농사일도 다 잊고야 말리라.
그러나 나처럼 시골에 일가친척 하나없는 서울뜨기는 이런 고향의 모습을 그저
드라마속 전원일기의 한 장면으로만 아리하게 느껴볼 뿐이다.
도시의 생활은 아파트의 육중한 철문을 닫아걸면 이웃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벅적한 군중속에 외로움이라고 해야하나?
남편이 옆에 있어도 느껴지는 공허함이 있다. 남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런 느낌을 덜어주는게 친구의 역할인가 보다. 남편은 친구들이 많다.
초등학교 동창부터 대학동기까지 꾸준한 만남을 가지며 같이 산행도 하고 술친구도 한다.
그런 남편이 가끔씩 부럽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일 그라운게 친구들이다.
그런데 여자들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못만나고 지낸다.
직장을 가진 친구들은 여유가 없어서, 집에 있는 친구들은 가정사에 매여서…
만나도 서로의 가정생활을 우선으로 하니 점심에 잠깐 보고 아쉬워도 돌아선다.
저녁시간에는 부부동반 모임외엔 만나지 않는게 기본 상식이다.
이렇게 만나다보니 횟수가 줄어들고 서원해지기 일쑤다.
속도 모르는 남편은 일년에 몇번 만나는 것도 친구사이냐고 묻는다.
친구라면 자기처럼 자주 보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 힘들다고 푸념도 할수 있어야지,
몇달에 한번, 그것도 차 한잔 우아하게 마시면서 할 말도 없지않냐고 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가끔 나는 남편에게 그런 푸념을 한다.
아이들 키우느라 친구들을 다 잃어버린 것 같다고, 나만 많은 희생을 하고 가정을 지키는거 같아서
너무나 억울하다고. 속상할 때 아무때고 같이해줄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건 남편 탓도 아이들 탓도 아니다. 내 자신의 문제일 뿐이다..
만남을 만들고 친구들을 먼저 찾았다면 해결될 일이었다.
오늘 주말이고 날씨도 좋아 남편과 고수부지까지 걸었다.
남편이 오랫동안 별렀던 일을 하기 위해서다. 그게 뭐냐고?
겁많은 부인에게 자건거 타는걸 가르치는 일이다. 옛날에는 물론 잘 탔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오랜만에 자전거 타기에 도전했다가 다친적이 있다.
아직도 파인 흉터가 남아있으니 그후론 자전거 타기에 엄두도 못냈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만하게 낮은 자전거를 하나 빌려 타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 겁을 내는 나에게 적당히 협박도 하고 (난 자전거도 못타는 ~삐리리~하곤 못살아~ 하면서)
페달을 밟자 안넘어지게 잡아주기도 하면서 끈질기게 훈련시킨 남편덕에
연습공간인 훈련장을 지나 길로도 나가 탈수있게 되었다.
길을 돌아 안넘어지고 다시 오니 교관처럼 뒷짐지고 지켜보던 남편의 얼굴에 웃음이 환하다.
자건거를 돌려주고 남편의 손을 잡고 돌아오며 나는 생각했다.
나를 넘어지지 않게 붙들어주고, 혼자 설때까지 기다려 주는 친구가 내 옆에 있노라고.
너무 가까이 있어 가끔씩 잊곤 했지만 어려울 때 같이 술한잔 하며 푸념도 들어준 사람,
힘들면 기대어 쉴 어깨를 내밀어준 사람… 정말 좋은 내 인생의 친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