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년차의 신혼(?) 생활

2003. 11. 13. 11:50벤쿠버의 일상/기러기 이야기














--------------------우리나라의 희귀한 야생화들----------------------




8월이 중반을 넘어섰다. 계속되었던 비로 더위는 벌써 물러선 모양이다.

벤쿠버에서 8개월 가까이 부슬거리는 비에 어지간히 질력났었는데

이곳의 비는 천둥에 번개에, 하늘이 뚫린듯 이삼일을 장대마냥 퍼붓더니

기어코 강물을 범람시켜 전국이 물난리다. 올해는 피해가 유난히 많단다.

작년 여름에도 캐나다 뉴스로 한국의 수해광경을 보았는데....




나이만큼 시간이 빨리 돌고있는지 눈만 뜨면 하루가 가버리는 느낌이다.

남편 일을 배운다고 쫓아다니고, 서류정리는 틈나는대로 전산작업에,

저녁운동까지, 하루종일 남편이랑 같이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친구들은 마누라한테 목걸이채워져 끌려다닌다고 남편을 놀려댄단다.

사실은 술자리 뜸해진 남편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면서 아직도 부부애가 그리 좋냐는 의문섞인 시선이다.



올해로 결혼 20년이 넘어섰으니 우리부부도 참 오랜세월을 같이 있었다.

그런데 작년까지도 직장생활을 한 나는 막상 남편에게 따뜻하게 베풀지 못하고 살았다.

내 몸이 지쳐있으니 집에서는 항상 신경질적이다. 놀러 가자고하면 좋은 얼굴로나서는 적이 거의 없고, 피곤하다, 몸이 안좋다하면서 중도에 분위기 망쳐놓기 일쑤다.

남편 친구들의 부부동반 모임도 달갑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술자리가 길어지면 사나운 눈길로 남편을 불편케해 먼저 일어서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러고보니 이번이 남편옆에서는 전업주부로서의 역활을 하는게 처음이다.

직장을 그만둔후 곧바로 분주하게 준비해 캐나다로 떠났으니,남편은 그 혜택을 못누린 셈이다.

거기다 생홀아비 생활을 1년이나 했으니, 남편은 이런 횡재(?)가 가끔 믿기지 않는가보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많이 너그러워졌다.

상대편 입장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배려하는 여유가 생겼다.

모임에 가서 술자리가 길어져도 옆자리의 난 느긋하다.

이제는 놀러가자는 말만하면 어디든 따라나선다.

남편은 내가 꽤 수다스러워졌다며 놀랜다. 말도 많아졌고 적당히 뻔뻔해졌으며 더욱 용감무쌍해졌다고 한다.
한마디로 못말리는 주책스런 아줌마가 되었단 소리다.

글쎄... 이 모든 변화들이 시간의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것같다.



낮시간에는 좀처럼 컴퓨터 앞에 앉기가 힘들다. (남편 챙기고 또 적당히 닥달하느라...)
혼자서 맘대로 지내다 요사이 내 잔소리를 듣는 남편의 반응은...
1. "언제 캐나다로 돌아갈거야?"
2. "가출한다. 씨~이"



새벽시간을 이용해 자판을 두드리다 한번씩 남편이 자는 안방문을 열어본다.

전에는 밤에 잠을 못이뤄 새벽까지 인터넷을 헤메는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

내가 온이후 남편은 너무도 평온하게 잘잔다. 일정한 호흡으로 오르내리는

남편 배의 리듬은 나에게도 안정감과 편안감을 준다.



딸아이는 화상채팅하면서 혼자 배운 기타 솜씨를 뽐냈다. 다음달부턴 아르바이트도 한단다.

여러가지로 욕심을 내면 다 해내고 마는 딸아이는 1년 사이에 캐나디언이 다된듯 싶다.

메일을 통 안쓰던 아들도 제법 어른스런 메일을 보냈다.

모든게 다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것 같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벤쿠버의 일상 > 기러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맞이  (0) 2003.12.01
비 오는 계절에  (0) 2003.11.21
겨울... 인가요?  (0) 2003.11.09
10월을 보내는 밤  (0) 2003.11.01
International Classmates  (0) 200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