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계절에

2003. 11. 21. 13:56벤쿠버의 일상/기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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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씨를 다 보내고 오늘부터 구름이 하늘의 반을 가렸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갈 준비에 바빴을 남편은 여전히 느긋하다.
일도 다 잊은 듯 태평하고 여유로운 것이 예전의 모습 같지 않아 의외롭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무척 크다. 아이들은 아직도 얇은 옷차림으로 나다니는데
나는 벌써 오리털 자켓을 꺼냈다. 추위를 타지 않았었는데 올해는 유난스레 벌써 몸이 시리다.
아침에 일어나 창가에 서니, 비가 타고 내리는 창으로 물안개로 덮힌 산과 호수가 보인다.
처음에 이곳에 와서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답게 느꼈던 풍경들을 이제 눈으로만 즐긴다.
둔감해진 마음만큼 조금은 강해지고 이곳 생활에도 적응되었다고 해야할지...

남편을 구경시키느라고 지도를 펼쳐 놓고 안 가본 곳을 골랐다.
North Van.쪽에 Lynn Valley와 Deep cove를 가 보기로 했다. 날씨는 흐렸고 오후엔 비가 올 태세였다.
Lynn Canon에 도착하여 계곡을 지나니 나무가 울창하여 오전 시간인데도 어두컴컴하다.
사람이 이따끔씩 보일뿐, 나무 뒤로 계곡 물이 흐르는 소리 외엔 너무 적막해
마치 강원도 산 속 길을 둘만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커다란 개를 끌고 가는게 이상했는데 20분쯤 걸으니 경고문이 나온다.
곰이랑 야생 동물이 많으니 개를 데리고 가던지, 혼자서는 다니지 말라고 써있다.
그렇지 않아도 산 길이 너무 으스스 했는데 다시 돌아 나오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주차장에 서서 안개로 가린 산봉우리 사이로 계곡물이 흐르는
풍경을 마냥 바라 보았다. 남편은 이 좋은 공기를 담배 연기로 흐리며 서있는데
흐린 날씨에 피어 오르는 담배 연기도 이 멋진 풍경과 하나가 된다.

차에 오르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름에 다시 오리란 다짐을 하며
웅장한 산을 뒤로 하고 노스 벤의 동쪽 끝 Deep cove로 향했다.
역시 아름다운 해변이 높은 산을 뒤로 하고 서 있는 그 곳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긴 터널 같은 바다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망망한 태평양 바다가 펼쳐지니
그 꿈을 펼칠 작은 요트들이 조랑 조랑 바다에 떠있다.
비 오는 해변 도시에 내려 한 시간 이상 걷는 동안 두어 사람 마주친게 고작이다.
한국 같으면 여지없이 들어찼을 횟집들이 있어야 할 자리인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 위로
개성있게 제 편한대로 지어진 주택들만 보이고, 차랑 샌드위치 파는 집이 두어집 정도다.

"왜 하나님은 캐나다에만 이렇게 자연의 혜택을 많이 주셨을까? 우리 나라에 십분의 일만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남편의 불평이 시작되었다.
프리웨이로 30분도 못가서 펼쳐진 바다와 산들, 바다 중간에 떠 있는 녹색의 섬들,
또 한가롭기만 한 오리와 갈매기들...평온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캐나다의 자연과 서울의 분잡함이 약간 섞여진다면 얼마나 이상적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녁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불을 켜 놓는 집이 많아졌다.
겨울이 길고 어둡고 지루한 비가 계속되므로 집 장식을 하게 된다고 했다.
반짝거리게 불을 밝히면 한결 겨울이 따뜻하고 재미있지 않냐고.

벌써 5시면 어둑해 지고 인적이 없는 이곳에서 남편은 혼자 저녁 산책을 나간다.
큰 길가 쪽으로 나가 가계들을 구경하며 다닌다고 한다. 가계들도 많이 닫혀 있는데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저녁먹은 후 치우고 있는 나를 지나쳐 이틀째 혼자만 나다닌다.
하긴 이 곳에서 나랑 손붙잡고 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길을 조금 익히고 나니
자신감도 생기나 보다.
남편은 이제 나 없이도 혼자 아이들 픽업을 하고 다닌다. 교회 분들의 얼굴도 많이 익혔다.

남편과 같이 속회 예배를 보고, 친한 분들이랑 모임을 갖고, 같이 찬양도 하니
오랫동안 이 곳에 산듯 착각이 든다. 그러니 떠난 후의 빈 자리도 더욱 커질 것이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 조금은 둔해질 것 같은데, 아직도 처음마냥 익숙치 않다.
....내가 사는 모습은 2년이 넘도록 늘 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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